캐나다 출신의 천재 감독 자비에 돌란은 젊은 나이에 세계 영화계에 충격을 안긴 인물입니다. 그의 영화들은 늘 사랑, 정체성, 관계의 복잡성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며, 젠더와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왔습니다. 특히 〈로렌스 애니웨이(Lawrence Anyways)〉 는 그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더 확장된 주제와 실험적인 미학을 보여주며, 돌란 영화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전작들과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작품의 서사, 영상미, 그리고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겠습니다.
전작에서 이어진 주제와의 연결 고리
자비에 돌란은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 를 통해 이미 가족과 젠더, 사랑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후 〈하트비트〉(2010)와 〈마미〉(2014)에 이르기까지, 그는 꾸준히 인간관계의 균열과 정체성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로렌스 애니웨이〉 역시 이러한 주제적 흐름 위에 서 있습니다. 주인공 로렌스는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전환을 선택하는 인물로, 그의 정체성 탐구는 곧 자비에 돌란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질문—“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사랑받을 수 있는가?”—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작들이 비교적 개인적이고 내밀한 감정의 기록에 머물렀다면, 〈로렌스 애니웨이〉는 10년에 걸친 서사 구조를 통해 훨씬 거대하고 보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사랑과 정체성이 개인을 넘어 사회, 역사, 그리고 시간이라는 차원으로 확장된 것이죠.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전작의 연장선이자 동시에 새로운 차원을 연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미학적 확장의 시도와 차별성
돌란의 전작들은 감각적 색채와 독창적인 음악 사용으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하트비트〉에서 보여준 슬로모션과 과감한 색감은 이미 그의 시그니처가 되었죠. 그러나 〈로렌스 애니웨이〉는 이러한 미학을 단순히 반복하는 대신, 훨씬 더 장대한 시각적 실험으로 나아갑니다. 영화 속 파티 장면에서 커튼이 하늘로 떠오르는 장면, 로렌스가 길거리를 걸으며 물줄기를 맞는 장면 등은 현실을 초월하는 듯한 영상적 환영을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히 스타일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로렌스가 겪는 내적 해방감과 혼란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장치입니다. 전작에서 감각적인 미장센이 주로 인물의 순간적 감정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면, 〈로렌스 애니웨이〉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체성의 여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발전한 것입니다. 또한 음악 역시 한층 성숙해졌습니다. 기존 작품들이 인디 음악과 팝 사운드를 감각적으로 삽입했다면, 본작에서는 클래식과 일렉트로닉이 교차하며, 감정의 고조와 서사의 흐름을 한층 웅장하게 이끕니다.
사랑과 정체성의 보편적 질문
〈로렌스 애니웨이〉가 전작들과 확연히 다른 점은 바로 사랑과 정체성의 관계를 장기적 서사 속에서 탐구했다는 것입니다. 전작들이 대체로 청소년기 혹은 젊은 시절의 순간적 갈등을 다뤘다면, 본작은 로렌스와 프레드의 10년에 걸친 관계를 통해 사랑이 어떻게 정체성과 맞부딪히고, 또 어떻게 지속되거나 무너지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로렌스는 여성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프레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결국 사회적 시선과 개인적 한계에 부딪혀 관계를 지속하지 못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퀴어 서사가 아니라,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사랑은 가능할까? 혹은 사랑은 타인의 변화와 고통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전작들이 주인공의 내적 갈등에 집중했다면, 〈로렌스 애니웨이〉는 두 사람의 관계라는 더 넓은 무대 위에서 질문을 던지며, 관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사랑의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결론: 돌란 영화 세계의 전환점
〈로렌스 애니웨이〉는 자비에 돌란의 영화 세계에서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전작들이 청년 감독의 예민한 감각과 실험적 미학을 보여줬다면, 본 작은 성숙한 작가로서의 비전을 증명합니다. 정체성 문제를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시간적, 철학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면서, 돌란은 자신이 단순한 퀴어 감독이 아니라, 인간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는 보편적 예술가임을 입증했습니다. 동시에 이 영화는 여전히 그의 감각적 미학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며, 이후 〈마미〉나 〈단지 세상의 끝〉 같은 작품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실험의 초석이 됩니다. 따라서 〈로렌스 애니웨이〉는 단순히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자비에 돌란이 청년 감독에서 세계적 작가로 도약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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